
2025년 9월 26일, 대한민국의 핵심 디지털 인프라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단순히 건물 일부가 불에 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정부24를 비롯한 수많은 대국민 행정 서비스와 내부 업무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디지털 시대에 국가의 데이터 인프라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의 발생 경과부터 원인, 그리고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까지 심도 있게 분석하고, IT 인프라 관리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 사건의 개요와 경과
2025년 9월 26일 금요일 저녁 8시 15분경,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데이터센터의 무정전 전원 장치(UPS)실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화재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국가 행정망의 심장부를 타격하는 심각한 재난으로 번졌습니다.
화재 발생과 초기 대응
최초 발화는 UPS실에 설치된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데이터센터는 화재 발생 시 전산 장비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스 소화 설비를 사용하는데, 이번에도 초기에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진화가 시도되었습니다. 하지만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의 특성상 내부에서 연쇄적인 열 폭주 반응이 일어나면서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소방 당국은 전산 장비 손상을 감수하고 전원을 차단한 뒤 직접 물을 사용하여 진화 작업을 벌여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화재는 발생 22시간 만인 다음 날 오후 6시경에야 완전히 진화될 수 있었습니다.
위기 경보 격상과 정부의 대응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행정안전부는 사고 발생 약 2시간 뒤인 오후 10시경 재난 위기경보 ‘경계’ 단계를 발령하고, 다음 날 오전 8시에는 최고 수위인 ‘심각’ 단계로 격상하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했습니다. 이는 이번 화재가 단순한 시설 피해를 넘어 국민 생활과 국가 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 화재의 핵심 원인, 리튬이온 배터리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정전 전원 장치(UPS)의 리튬이온 배터리로 지목됩니다. 데이터센터에서 UPS는 정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도 서버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UPS와 배터리의 역할
UPS 시스템은 평상시에는 한전(KEPCO)으로부터 전력을 받아 서버에 공급하면서 동시에 배터리를 충전합니다. 만약 정전이 발생하면, 즉시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으로 전환하여 서버가 중단 없이 작동하도록 합니다. 이 ‘골든 타임’ 동안 비상 발전기가 가동되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이어가게 됩니다.
왜 리튬이온 배터리가 문제였나?
과거 데이터센터에서는 주로 납축전지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공간 효율성이 좋은 리튬이온 배터리 채택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리튬이온 배터리는 외부 충격, 과충전, 과열 등에 취약하며, 한번 불이 붙으면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열 폭주는 배터리 셀 하나에서 시작된 발열이 주변 셀로 연쇄적으로 번지며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결국 통제 불가능한 화재나 폭발로 이어지는 현상입니다. 이번 사고 현장에는 192개의 리튬이온 배터리 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 중 하나의 배터리에서 시작된 문제가 전체 시스템의 화재로 번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데이터센터의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Battery Management System)의 중요성과 함께, 리튬이온 배터리의 잠재적 위험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paraly 국가 시스템 마비, 피해 규모와 영향
이번 화재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물리적인 시설 손실을 넘어, 국가 행정 서비스의 전면 중단이었습니다. 국민 생활과 직결된 수많은 온라인 서비스가 멈춰 섰습니다.
주요 서비스 중단 현황
- 정부24: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각종 민원서류 발급이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 인터넷 우체국: 우편, 택배 조회 및 접수, 예금, 보험 등 우체국 관련 모든 온라인 업무가 마비되었습니다.
- 국민신문고, 안전신문고: 국민들의 민원 및 신고 접수 창구가 막혔습니다.
- 119 신고 시스템: 음성 통화 신고는 가능했지만, 문자나 영상을 통한 신고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 기타: 모바일 신분증, 국가법령정보센터, 검역정보 사전입력시스템(Q-CODE) 등 약 70여 개의 정부 전자시스템과 647개의 내부 업무 시스템이 가동을 멈췄습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일상적인 민원 업무 처리부터 금융 거래까지 광범위한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정부는 수기 접수, 대체 사이트 안내 등으로 대응했지만, 디지털 행정에 익숙해진 사회에 아날로그 방식의 대응은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데이터센터 관리자 입장에서의 분석
IT 인프라, 특히 데이터센터를 운영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사고는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 재해 복구(DR) 시스템의 중요성: 핵심 데이터와 서비스는 물리적으로 분리된 다른 지역의 데이터센터에 실시간으로 복제되는 재해 복구(DR)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이번 사고에서 서비스 중단이 장기화된 것은 대전센터의 기능을 즉시 대체할 수 있는 DR 체계가 미흡했음을 보여줍니다.
- 인프라 이중화의 함정: 단순히 서버나 네트워크 장비를 이중으로 구성하는 것을 넘어, 전력, 냉각, 소방 설비와 같은 기반 시설(Facility)의 완벽한 이중화가 필수적입니다. UPS실 화재 하나로 전체 센터의 기능이 마비된 것은 전력 공급 경로의 단일 장애점(SPOF, Single Point of Failure)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 정기적인 모의 훈련의 필요성: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실제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정기적으로 전원 차단, 화재 발생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한 모의 훈련을 통해 대응 절차를 숙달하고 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 사고 이후, 남겨진 과제와 교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대한민국의 디지털 전환 수준에 비해 재난 대비 및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었습니다. 정부는 신속한 복구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번 사고는 국가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의 안정성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값비싼 교훈이었습니다. 배터리 안전 기준 강화, 재해 복구 체계의 전면적인 재검토, 그리고 실전과 같은 위기 대응 훈련의 정례화를 통해 다시는 이와 같은 ‘디지털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국민의 신뢰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확실한 후속 조치를 통해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